2008년 04월 28일
티라노사우루스는 시체청소부이다 - 빌 워싱턴 박사 측 증언

|
곧 오른쪽 앞의 수풀 속에서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들리면서 커다란 몸뚱이 하나가 튀어나왔다. 이어 또 하나의 몸뚱이가 튀어나왔다. 누런 색, 그리고 갈색 줄무늬, 워싱턴은 그것이 무엇인지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알로사우루스, 두 마리의 알로사우루스가 티라노사우루스를 향해 돌진해 오고 있었다.
우워억!
티라노사우루스가 그 큰 입을 한껏 벌리면서 커다란 소리로 울부짖었다. 그 엄청난 덩치에 딱 어울리게 웅장하면서도 날카로운 소리였다.
그래! 바로 그거야!
워싱턴은 캠코더를 들고 있지 않은 주먹을 꽉 쥐었다. 물어! 물어뜯어!
사실 알로사우루스는 두 마리라고는 했지만 티라노사우루스 한 마리보다 더 무거울 것 같지 않았다. 길이에 있어서도 조금 짧았지만 그보다는 골격 크기에서 너무 큰 차이가 있었다. 아니, 그 모든 것을 뛰어넘을 수 있는 것은, 그 튼튼한 티라노사우루스의 턱 안에 길게 늘어서 있는 커다란 이빨이었다. 길이가 15센티미터에 달하는 위대한 이빨.
워싱턴의 경험으로 어림잡아 볼 때 티라노사우루스는 적어도 7톤 정도는 될 것 같았다. 혹은 그보다 더 무거울 수도 있었다. 그에 비해 알로사우루스는 두 마리를 합친다 해도 4톤에서 5톤 사이를 넘지 않을 것 같았다. 따라서 그 거대한 이빨 등 다른 인자를 모두 빼고 체중만으로 따져 봐도 티라노사우루스가 이길 것이라고 워싱턴은 짐작했다. 아니, 확신하고 있었다.
아프리카 생태계에도 그런 예가 있었다. 숙적인 암사자와 하이에나 무리가 싸울 때는 그 전체 중량이 무거운 쪽이 이기는 것이 상례였다. 암사자 한 마리의 무게는 대략 하이에나 두 마리와 같았다. 따라서 암사자 다섯 마리는 하이에나 열 마리와 대등했고, 만약 그 균형이 깨어진다면 수가 조금이라도 딸리는 쪽이 불리하기 마련이었다.
꼭 그러한 예가 적용되는 것은 아니겠지만 이곳에서도 어느 정도 그러한 법칙은 통할 것이라고 워싱턴은 확신했다. 더욱이 티라노사우루스의 거대한 이빨은 알로사우루스와는 비할 바가 아니었다. 하이에나는 체구가 작아도 그 이빨이 단단하기로 유명했지만 알로사우루스는 그렇지도 않았다. 알로사우루스는 이빨이 작고 안으로 휘어져 있어 고기를 베어 물기에는 좋은 구조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덩치가 큰 상대에게 치명적인 타격을 주기에는 부족했다. 그 점에서는 턱이 발달하고 이빨이 커다란 티라노사우루스가 유리했다. 결론적으로, 아무리 두 마리라 해도 알로사우루스는 티라노사우루스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두 마리의 알로사우루스는 상대와의 거리가 가까워지자 속도를 줄였다. 그리고 양쪽으로 갈라져 천천히 티라노사우루스를 향해 다가갔다. 티라노사우루스는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며 접근해 오는 적들을 견제하고 있었다.
그때, 이변이 일어났다.
오른쪽으로 접근한 알로사우루스가 상대를 향해 쪼듯이 아가리를 내미는 순간, 갑자기 티라노사우루스가 새된 비명을 지르면서 몸을 돌렸다. 놈은 그곳에서 벗어나기 위해 허둥지둥 달아나다가 죽은 초식공룡에 발이 걸려 그대로 땅바닥에 내동댕이쳐졌다. 쿵! 그 엄청난 체중에 땅이 크게 진동하면서 고여 있던 빗물이 사방으로 튀었다.
기선을 잡은 알로사우루스들은 그대로 티라노사우루스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러나 직접적인 공격을 하는 것은 아니었다. 단지 아가리를 들이밀며 위협만을 하고 있었다.
끄악!
다시 한 번 티라노사우루스의 입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놈은 사나운 투견에게 제압당한 잡종 개처럼 깨갱거리면서 헐레벌떡 몸을 일으켰다. 그러나 그 짧은 앞다리와 무거운 머리 때문에 그것조차 쉽지가 않은 듯 버둥거리고 있었다. 알로사우루스는 여전히 그 옆에 서서 위협을 해 댔고, 가까스로 몸을 일으킨 티라노사우루스는 처절한 비명을 질러 대며 건너편 숲을 향해 허둥지둥 달아났다. 상대가 저 멀리 달아날 때까지 지켜보고 있던 알로사우루스들은 그제야 마음을 놓고 죽은 공룡에게 다가가 그 몸뚱이를 물어뜯기 시작했다.
워싱턴은 입이 딱 벌어진 채 그 광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너무나도 기가 막힌 탓에 촬영을 할 생각도 못하고 있었다. 아래쪽으로 축 처진 캠코더의 파인더 화면에는 쓸데없는 나뭇잎만 비치고 있었다.
“그랬어. 역시 티라노사우루스는 스캐빈저였어.”
알로사우루스들이 실컷 배를 채우고 간 뒤에 그 만신창이 된 초식공룡 시체에 다가가 들여다보고 있던 워싱턴이 허탈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줄리는 그 끔찍한 시체가 역겹다는 듯 거리를 두고 곁눈질로 힐끔거리고 있었지만 워싱턴은 그렇지 않았다. 그는 죽은 공룡의 몸을 이리저리 살피면서 계속 중얼거리고 있었다.
“결국 그 말이 옳았어. 사냥을 하기에는 앞발이 너무 작다, 몸이 너무 둔하다, 후각이 발달한 것은 시체 냄새를 맡기 위한 것이다……. 그래, 그 학설이 옳았던 거야.”
스캐빈저.
그것은 하이에나처럼 죽은 동물의 시체를 뜯어먹고 사는 동물을 의미했다. 물론 하이에나도 완전한 스캐빈저는 아니었다. 그들도 때로는 무리를 지어 사냥을 하고는 했다. 다만 뒷다리가 너무 짧아 달리기에 서툰 그들은 다른 맹수가 잡은 먹이를 빼앗을 때도 있었지만. 아프리카 초원에서 진정한 스캐빈저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커다란 대머리독수리였다. 그들은 너무 크고 둔한 몸 때문에 거의 사냥을 할 수가 없었다.
그 반대되는 말이 프레더터, 즉 포식동물이었다. 포식동물은 대부분 다른 동물들을 직접 사냥해서 자신의 배를 채웠다. 티라노사우루스가 스캐빈저인가 프레더터인가 하는 논쟁은 꽤 오래 지속되어 왔지만 아무도 확실한 판정을 내릴 수는 없었다. 스캐빈저 학설을 주장한 학자들이 몇 가지 이유를 증거로 제시했지만, 티라노사우루스가 거의 모든 육식공룡들을 통틀어 양안시, 즉 정면을 똑바로 바라볼 수 있는 시각이 잘 발달해 있다는 점을 내세워 프레더터 설을 주장한 학자들은 반박할 수 있었다. 결국 직접 눈으로 확인하지 않는 이상 티라노사우루스가 스캐빈저인지 프레더터인지는 함부로 판단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 워싱턴이 인류 역사상 최초로 그것을 직접 목격한 것이었다.
“왜 그렇게 생각하죠?”
허탈감에 빠진 채 계속 중얼거리는 워싱턴을 답답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던 줄리가 반박하듯 물었다. 오히려 답답해진 것은 워싱턴이었다.
“직접 눈으로 못 봤어? 겨우 자기 덩치의 반도 안 되는 알로사우루스 두 마리에게 쫓겨 가는 것을? 결국 이 희생자는 티라노사우루스가 사냥한 게 아냐. 어떤 다른 이유로 이미 죽어 있었던 거지.”
“하지만 그럴 수도 있잖아요. 치타나 사자도 자기가 잡은 먹이를 하이에나에게 뺏기곤 하죠. 오히려 알로사우루스가 하이에나가 아닐까요?”
“천만에!”
워싱턴은 답답하다는 듯 손을 내저었다.
“자기가 애써 잡은 먹이를 그렇게 쉽게 내줘? 사냥하는 게 그렇게 쉬운 줄 알아? 물론 치타는 너무나도 손쉽게 내주지. 단, 치타는 그만큼 빨라서 사냥을 잘 해. 하지만 덩치가 큰 육식동물은 그만큼 사냥이 어렵다고. 사자 수컷을 보면 잘 알 수 있지. 그런데 그렇게 쉽게 먹이를 포기할까? 더욱이 치타처럼 몸집이 가냘픈 것도 아닌, 티라노사우루스가?”
“음…….”
할 말이 없었던 줄리는 무거운 신음소리를 흘렸다. 물론 줄리는 학설 따위를 가지고 논쟁하자는 것은 아니었다. 애초 그녀는 취미 삼아 그 분야를 공부했을 뿐, 학설이나 논쟁 따위에는 큰 관심이 없었다. 다만 너무 체념한 워싱턴이 공룡 시체나 붙들고 늘어져 칭얼대고 있는 모습이 안쓰러워 달래 주려 했을 뿐이었다.
그러한 줄리의 마음을 모르는 워싱턴은 손바닥으로 죽은 공룡을 가리키면서 빈정대는 투로 말했다.
“보라고! 아마 놈은 이 먹이를 잊지 않고 다시 찾아올 거야.”
“뭐라고요?”
그 말에 줄리는 기겁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거예요?”
“걱정 마. 내가 말했잖아. 놈은 스캐빈저라고.”
워싱턴은 여유를 부렸다.
“그래도…….”
“그 둔한 스캐빈저가 왜 우리를 공격하겠어? 눈앞에 아직도 1톤은 넘을 고깃덩이가 넘쳐나고 있는데. 우리가 위협만 되지 않는다면 별 신경도 안 쓸 거야. 그리고 우리는 위협이 될 수도 없어. 7톤이나 되는 공룡이 2백 파운드도 안 되는 인간에 신경을 쓸 틈은 없다고!”
거기까지 설명한 워싱턴은 곧 공룡에서 물러나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자, 오늘은 이만 돌아가자고. 너무 늦었어. 날이 어둡기 전에 돌아가야지.”
옆으로 따라붙는 줄리에게 그는 계속해서 떠들어 댔다.
“내일은 좀더 일찍 출발하자고. 날이 밝으면 바로 출발해서, 이 일대를 다 뒤져보는 거야. ‘그것들’을 찾아야 해. 다리를 놓은 그 동물을 말야.”
줄리는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워싱턴이 돌아보든 말든.
워싱턴은 숲을 벗어나 벌판을 가로지르면서도 조금 전에 목격한 광경의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듯 계속 투덜거리고 있었다.
“놀랍군, 놀라워. 정말 놀라워!”
그것은 거의 빈정거림에 가까웠다.
“티라노사우루스가 스캐빈저라니, 그 대단한 놈이. 게다가 그 큰 덩치로 알로사우루스 두 마리를 못 이기고 쩔쩔매면서 달아나는 꼴이란……. 아마 미국인들이 알면 기절초풍할 거야. 너무나도 충격을 받아서 얼이 빠져 버릴 거야. 그 위대한 티렉스가…….”
“혹시 다른 공룡일 가능성은 없나요?”
“뭐?”
문득 튀어나온 줄리의 질문에 대한 워싱턴의 반향은 매우 컸다. 줄리는 헛기침을 한 번 하고는 다시 물었다.
“혹시 알베르토사우루스 따위의 공룡일 가능성은 없느냐, 그 말이죠.”
“알베르토사우루스? 저 덩치가 알베르토사우루스 정도로밖에 안 보여? 저건 티라노사우루스야!”
워싱턴은 자존심이 상한 듯 언성을 높였다. 그것은 달리 말하자면 다음과 같았다. 내가 티라노사우루스와 알베르토사우루스를 구분 못할 것 같아?
“혹시 모르잖아요. 화석으로 밝혀진 것보다 덩치가 훨씬 큰 알베르토가 있을지도.”
“날 뭘로 보는 거야? 앞발이나 머리통 크기만 봐도 티라노사우루스는 구분이 돼! 또 위턱의 굵기가 확연하게 다르지. 그리고 그놈 눈 뒤에 튀어나온 돌기를 난 확인했어!”
*
티라노사우루스 : 사냥꾼 또는 시체청소부? Act 2.
Act 1. 티라노사우루스는 사냥꾼인가, 청소부인가?
전에 올렸던, 티라노사우루스가 사냥꾼이냐 아니면 시체청소부냐 하는 문제를 놓고 두 박사가 텔레비전 생방송에서 심한 의견 충돌을 일으킨 데 대한, 빌 워싱턴 박사 측의 증언입네다.
보다시피 워싱턴 박사의 경험담에 의하면 티라노사우루스는 거의 ‘똥강아지’ 수준입네다. 그것도 덩치만 아주 큰 똥개 말이디요.
다만 저 목격담은 순전히 워싱턴 박사 개인의 말에 따른 것으로, 다른 증인은 없습네다. 또한 그의 캠코더는 하필 그 중요한 순간에 엉뚱한 곳을 비추고 있었다는 겁네다. 이런 까닭에 그는 생방송인 하동철 박사와의 대담에서 결정적 증거를 제시하지 못했는데, 시청자들의 의견은 반신반의입네다.
|
(트랙백 : http://conodont.egloos.com/1596089)
# by | 2008/04/28 18:27 | 박학무식 | 트랙백(1) | 덧글(10)





☞ 내 이글루에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도움말]
제목 : 티라노사우루스는 시체청소부이다 - 빌 워싱턴 박사 ..
(트랙백 : 티라노사우루스는 시체청소부이다 - 빌 워싱턴 박사 측 증언 ) 티라노사우루스는 시체청소부이다 - 빌 워싱턴 박사 측 증언 도서나의 테마글 보기테마 스토리 메인 조회(52) 박학무식 | 2008/04/.....more
제목으로 볼 때 동화인가 봅네다.
설마 존 호너가 쓴 게 아닌 이상 교양서적 등에 저런 제목을 함부로 달 사람은 없을 테니낀.
어쨌건 이거이 그 유명한(!) 티라노사우루스 겁쟁이설입네다.
청소부 정도가 아니라 아주 겁쟁이라는 거니
다현이가 보는 책 제목과도 잘 맞아떨어지누만요.
혹시 타임리프를?;;;
"어쩌다 인간이 공룡을 만났을까?"
뭐, 기런 것과 관련이 있기는 합네다.
사실 작품 전반을 꿰뚫는 주제도 바로 미자르 님의 질문과 같은 것입네다.
우연히 시간여행을 할 기회를 얻은 고생물학자덜이 그 사실을 밝히려 애쓰고 있디요.
기런데 이거이 1996년에 쓴 글이라 지금은 좀 문제가 있기는 합네다.
알로사우루스의 후손이라는 놈들이 발굴되고 있는 마당에서,
또한 당시 제가 알고 있는 지식의 한계 때문에 단적으로 쓴 거이디만,
저거이 꼭 알로사우루스가 아닌 그 후손일 수도 있다는 기디요.
정확하게 화석을 들여다보지 않고 겉모습만 봤을 땐 모른다는 겁네다.
하지만 애초 의도는 쥐라기의 포식자 알로사우루스 그 자체인 것으로 한 겁네다.
어쨌건 예전에 쓴 글이라 그 뒤로 업데이트 된 정보는 고려하지 않은 겁네다.
관련된 학설에 대해 정확하게 알고 계시누만요.
다만 여전히 청소부 설을 내세우는 학자도 있디요.
Act 1을 보시면 알갔디만 저는 이 문제를 소설이라는 가상의 세계로 끌어들여 얘기하고 싶었습네다.
기래서 두 학자가 치열하게 다투는데, Act 2는 그 중 한 학자의 증언입네다.
이제 다른 학자의 반대 증언을 들어볼 차례가 된 기디요.
제대로 읽어보고 얘기하라우.
유딩 그림책 보듯 껍데기만 훑지 말고 말이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