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05월 07일
티라노사우루스는 가장 난폭한 사냥꾼이다 - 하동철 박사 측 증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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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넬슨, 윌리엄 넬슨입니다. 하 박사님의 동료이죠.”
사내가 자신을 소개했다. 워싱턴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 박사?”
“예. ‘동철 하’ 박사 말입니다.”
“동철 하? 그…….”
갑자기 워싱턴의 인상이 일그러졌다. 영문을 몰랐던 줄리는 멍한 표정으로 그의 얼굴을 살필 뿐이었다.
“예. 아시죠? 혹시 그 분을 만났나요?”
“예! 아주 잘 알죠! 그 골치 아픈 인간.”
“그렇군요! 어디서 봤죠?”
넬슨이 환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그러나 워싱턴은 생각하기조차 싫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대꾸했다.
“그 인간, 세미나에서 한 번 만났지만, 두 번 다시는 보고 싶지 않소!”
“그럼? 여기선 못 봤나요?”
“뭐? 그가 여기에 왔단 말이오?”
넬슨은 그 말에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실망한 얼굴로 한숨을 내쉴 뿐이었다.
“못 봤군요?”
“그가 어떻게, 어떻게 해서 그가 여길 온 거요?”
“당신과 별로 다르지 않소.”
이제 넬슨의 말투는 무뚝뚝하게 변해 있었다.
“그래요? 하긴, 충분히 그럴 인간이지.”
그렇게 빈정거린 워싱턴이 문득 생각났다는 듯 넬슨에게 물었다.
“그런데 당신, 티라노사우루스가 스캐빈저라는 사실을 알고 있소? 또 그놈이 알로사우루스 두 마리에게 겁을 먹고 달아난다는 사실은? 자기가 먹던 공룡까지 버리고 말이오. 아마 티라노사우루스는 아예 싸움 자체를 할 능력이 없는 것 같소. 그저 대가리와 이빨만 큰 스캐빈저에 불과하지. 하 박사는 아직 그걸 모르고 있겠죠? 하긴, 알 턱이 없겠지. 그 한심한 인간이.”
“관심 없소.”
넬슨은 그 질문을 무시하면서 워싱턴 일행이 가던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무사하셨군요?”
“그 동안 어딜 다녀왔나?”
넬슨의 인사말을 무시하면서 하동철이 물었다. 넬슨은 여전히 변함없는 하동철의 모습에 쓴웃음을 짓고 나서 대답했다.
“박사님을 찾으러 다녔죠.”
“나를?”
“예. 정말 이곳저곳 안 돌아다닌 데가 없습니다.”
“이제 찾았으니 됐네.”
“예.”
이 낯설고 위험한 곳에서 며칠 만에, 무려 4일 만에 만났음에도 하동철은 평소와 똑같은 태도를 취하고 있었다. 동료가 살아 있다는 사실에 감격을 할 수도 있음에도.
“돌아다니다가 다른 사람들과 마주쳤습니다.”
“그래? 그거 안됐군.”
하동철은 여전히 저 앞에 있는 티라노사우루스만을 응시하면서 역시 대수롭지 않다는 투로 대꾸했다. 습관적으로 상의 주머니를 뒤진 그는 위스키 병을 꺼내 한 모금을 홀짝거렸다.
“그들은 워싱턴과 앤더슨 양이었습니다.”
“그렇다면 더 안됐군.”
“워싱턴의 말에 의하면 티라노사우루스가 완벽한 스캐빈저라고 하더군요.”
“뭐? 그런…….”
그 말에는 반응했다. 갑자기 넬슨을 돌아보면서 언성을 높이던 그는 힐끗 티라노사우루스 쪽을 돌아보고는 재빨리 허리를 숙였다. 넬슨도 급히 몸을 낮추었다.
잠시 침묵의 시간이 흘렀다. 다행히 공룡이 뛰어오는 발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조심스레 나뭇잎 틈으로 내다보니 잠시 이쪽을 노려보고 있던 티라노사우루스는 다시 죽은 공룡을 물어뜯기 시작했다.
“워싱턴 그 자는 쓰레기야!”
천천히 머리를 들면서 하동철이 낮게 깔린 목소리로 부르짖었다. 그는 다시 위스키를 한 모금 들이키고 나서 뒤를 이었다.
“그 썩은 인간이 뭘 안다고 그런 소릴 지껄이나? 그 인간은 안방샌님이고 탁상공론자에 불과해!”
“하지만 그는 직접 봤답니다.”
넬슨이 담담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체중이 자신의 절반도 안 되는 알로사우루스 두 마리에게 먹이를 빼앗기고 달아날 정도라더군요. 한마디로 티라노사우루스는 전투능력이 전혀 없다고 워싱턴은 말했습니다.”
“그래?”
문득 하동철의 얼굴에 차가운 비웃음이 돌았다. 혹은 빈정거리는 표정 같기도 했다. 위스키 병을 한 번 더 빨고 주머니에 넣은 그는 자랑스러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내가 보여 주지.”
그 말이 나온 다음 순간, 하동철은 티라노사우루스 쪽을 향해 큰 소리로 외쳤다.
“헤이! 베이비!”
티라노사우루스의 머리가 빠르게 그들 쪽으로 돌아왔다. 두 사람을 발견하는 순간 그 움푹 팬 눈이 섬뜩하게 빛났다.
“이리 와, 베이비!”
넬슨이 미처 말릴 틈도 없었다. 하동철이 한 번 더 외친 순간, 티라노사우루스는 급히 몸을 돌려 돌진해 오기 시작했다. 그 무거운 몸집이 달려오는 통에 땅이 쿵쿵거렸다.
“빨리 달아나요!”
넬슨은 허둥지둥 하동철의 팔을 잡아끌었다. 그러나 하동철은 질질 끌려오면서 악을 쓰며 묻고 있었다.
“이래도 내 말을 못 믿나?”
“믿습니다!”
넬슨은 마지못해 역시 악을 써서 대답했다.
“그 동안 많은 걸 연구했다네.”
문득 하동철의 말투가 조금은 진지해졌다. 넬슨은 즉시 반응했다.
“어떤 것들입니까?”
“많은 공룡들에 대해서, 특히 티라노사우루스에 대해서는 아주 많은 것들을 알아냈어.”
“그렇군요.”
“아까 우리를 쫓아온 그놈을 며칠 동안 따라다녔지. 그래서 별 걸 다 구경했다네.”
하동철은 가슴 주머니에서 포켓카메라를 꺼내 보였다.
“망할! 그때 굴러 떨어지면서 캠코더를 잃어버리는 통에 겨우 이걸로 사진만 몇 장 찍었을 뿐이지만.”
“그런데 티라노사우루스는 정말 사냥꾼입니까?”
넬슨은 아직도 미심쩍은 점을 떨쳐 버릴 수 없다는 듯이 물었다. 하동철의 한 쪽 뺨이 씰룩거렸다.
“왜? 다시 한 번 백 미터 경주를 하게 해줄까?”
“아니, 그건 됐습니다.”
넬슨은 질렸다는 표정으로 손을 내저었다.
“두 번 다시는 그런 짓을 하지 마십쇼. 아까는 정말 큰일 날 뻔했습니다.”
“그럼 더 이상 그 문제를 따지지 말게.”
하동철이 콧방귀를 뀌었다.
“하지만 워싱턴 박사 말에 의하면…….”
“그 쓰레기 얘긴 꺼내지 말라니까!”
워싱턴이라는 이름이 거론되자 갑자기 하동철이 짜증나는 듯이 외쳤다. 일단 입을 다물고 있던 넬슨은 잠시 사이를 두었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물론 티라노사우루스가 작은 동물을 공격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대형 공룡은…….”
“아까 그 트리케라톱스도 우리 베이비가 사냥한 거야.”
더 이상 듣기 싫었던지 하동철은 재빨리 넬슨의 말을 막았다. 하동철은 자신이 관찰하던 그 티라노사우루스를 ‘베이비’라고 부르고 있었다.
“그래요? 전 사냥하는 소리를 듣지 못했는데요?”
“어제 저녁에 사냥한 거야. 그리고 식사를 한 뒤에 그 옆에서 자다가 일어나서 아침식사를 한 거지.”
“아! 그렇군요?”
“그래. 그러니 더 이상 그 얘기는 꺼내지 말게. 나는 베이비가 안킬로사우루스를 사냥하는 광경까지 보았네.”
“와! 그렇군요? 그 탱크처럼 투박하게 생긴 놈을 보고 싶었는데……. 그런데 어떻게 사냥하던가요?”
공룡의 몸을 깨끗하게 손질한 넬슨은 나무꼬챙이로 그 몸통을 찔러 불 위에 올려놓으면서 물었다. 하동철은 타오르는 모닥불을 바라보면서 꿈을 꾸듯 말했다. 광기가 서린 그의 눈동자에 모닥불이 비치고 있었다.
“뭐, 아주 쉬워. 안킬로사우루스는 땅바닥에 바짝 들러붙어 꼬리에 달린 골편뭉치를 마구 휘두르면서 살기 위해 길길이 날뛰지만, 그건 다 허튼 짓이야. 우리 베이비는 그냥 유유히 그놈의 앞쪽으로 돌아가서 그 주둥이를 씹어 버리더군. 한쪽 발로는 놈이 움직이지 못하도록 목덜미를 밟아 버리고 말야. 결국 몸을 사린다고 땅바닥에 들러붙은 게 베이비에게 짓밟히는 꼴이 된 거지.”
“하지만, 주둥이만 물어뜯는다고 죽지는 않을 텐데요?”
“아, 또 있지. 그 다음에 베이비는 놈의 앞다리를 덥석 물더군. 그러더니 확 뒤집어 버리는 거야. 거북이 뒤집듯이 말야. 알겠나?”
넬슨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대충 알겠습니다. 정말 대단하군요. 그런데 다른 육식공룡이 나타나면 싸우지 않고 양보를 하는…….”
“내가 그 점을 분명히 해 두지!”
넬슨은 하동철의 화를 돋우지 않도록 최대한 조심해서 말을 했지만 결국 뜻대로 될 수 없었다. 하동철은 이제 너무 언성을 높이지는 않았지만 빠르게 쏘아 대는 투로 말했다.
“워싱턴인지 억지똥인지, 그 쓰레기 말은 하나도 들을 게 없어! 그 인간 말은 다 엉터리야! 그놈은 발굴 현장에 가서도 캐비아와 샴페인을 즐기는 쓰레기라고! 한마디로, 발굴자가 아니라 호사가란 말이지.”
잠시 침묵이 흘렀다. 단지 불붙은 나무가 튀는 소리와 고기가 지글거리는 소리만이 정적을 메울 뿐이었다. 인상을 잔뜩 구긴 채 불길만을 바라보고 있던 하동철이 다시 넬슨을 향했다.
“내가 확실한 거 하나만 밝혀 두지.”
“그게 뭡니까?”
넬슨의 한 쪽 눈이 움찔거렸다.
하동철은 사악함이 느껴질 정도로 낮게 깔린 목소리로 말했다.
“엊그제인가? 베이비가 배가 고픈데 주변에 초식공룡이 없었어.”
“그런데요?”
호기심이 잔뜩 동한 듯 넬슨은 앞으로 몸을 내밀며 물었다. 그의 눈은 뭔가를 기대하는 듯 빛을 발하고 있었다. 그러나 하동철은 대수롭지 않다는 투로 말을 맺었다.
“그러자 베이비는 2톤이 넘을 법한 육식공룡 아벨리사우루스를 잡아먹었다네.”
*
티라노사우루스 : 사냥꾼 또는 시체청소부? Act 3.
Act 1. 티라노사우루스는 사냥꾼인가, 청소부인가?
그 유명한(!), 텔레비전 생방송 토크쇼에서 티라노사우루스가 철저한 사냥꾼이라는 주장을 내세워 함께 참석했던 빌 워싱턴 박사를 신랄하게 공격했던 하동철 박사의 경험담입네다.
하동철 박사는 티라노사우루스가 사냥하는 모습을 촬영했다고 주장하기는 했지만 워낙 성능이 안 좋은 포켓카메라로 빗속, 또는 날이 어두울 무렵 찍은 까닭에 그 장면이 너무 희미하게 남았다는 문제점이 있디요.
먹이를 먹다가도 근처에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아채자 무조건 달려들 정도로 성질이 사납다는 점은 하 박사의 측근인 넬슨 소령이 증언했지만, 넬슨 소령이 동료 편을 드는 것은 그만두고서라도, 그도 티라노사우루스가 실제로 대형 공룡을 사냥하는 모습은 목격하지 못했다고 합네다. 그 역시 모두 하 박사에게 전해들은 것이라고 하디요.
하지만 어떻게 보면 워싱턴 박사 측의 주장보다는 좀 더 신빙성이 있습네다. 심리를 분석했을 때 말이디요. 일단 넬슨 소령은 자신이 티라노사우루스의 사냥 광경을 목격하지 못했다는 점을 솔직히 밝혔고, 또한 하 박사와 넬슨 소령은 서로를 가장 신뢰하는 사이여서 서로 간에 거짓을 말하지 않는다는 점입네다. 따라서 하 박사가 넬슨에게 한 말은 거의 진실일 가능성이 높습네다.
다만 문제가 있다면 그의 주장은 워싱턴 박사의 목격담과 전혀 상반된다는 것인데, 그가 거짓말을 하는 게 아니라면, 과연 그 공룡이 진짜 티라노사우루스냐 하는 데 초점을 맞출 수밖에 없습네다.
이것은 워싱턴 박사 역시 마찬가지입네다. 두 사람이 목격한 공룡의 성격이나 행동방식이 그토록 다르다면, 적어도 둘 중 한 사람은 다른 공룡을 본 것이라는 것이죠. 혹은 워싱턴이 거짓말을 한 것일 수도 있지만 그 역시 성격으로 볼 때 그럴 가능성은 낮습네다.
이러니 생방송에서 대판 싸움을 벌일 수밖에 없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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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y | 2008/05/07 18:50 | 박학무식 | 트랙백(2) | 덧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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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리고 이 부분,
"따라서 하박사가 워싱턴에게 한 말은 거의 진실일 가능성이 높습네다." --> 혹시 넬슨에게 한 말이 아닌가요?
지난번 광뿔룡병 편에서도 야기했듯이 이미 1996년에 썼던 글이라 내킬 때 올리는 기디요.
처음 방송국 장면은 2000년에 쓴 것이고 말이디요.
꼬깔 님은 엄청나게 부지런하신 거고, 오히려 제가 게을러서리 새로 쓰지는 않고
오래된 걸 우려먹는 기디요. 크학학!
아, 안킬로사우루스의 꼬리...
그리고 파키케팔로사우루스의 정수리...
이런 것도 이미 다루었는데 비록 장편소설은 너무 길디만 부분적으로 발췌해 올리는 것은
관심을 가지는 분덜이 있는 듯해서 이런저런 걸 조금씩 올려 볼 예정입네다.
꼭 공룡 자체에 대한 게 아닐지라도, 관련 학문 혹은 과학 전반에 대한 주제가
그 작품에는 워낙 많이 녹아 있어서 말이디요.
파키케팔로사우루스는 엊그제 인터넷을 뒤져봤더이만 '박치기설'은 들어갔더만요.
기런데 저는 이미 그 정수리의 용도도 다른 쪽으로 쓰고 있었디요.
아, 그리고 '워싱턴' 지적 고맙습네다.
이거이(뒤의 해설) 이미 몇 주 전에 써 놓고 한 번 살펴보기까지 했는데 요즘 계속 뇌가 좀
체공중이라서리 기런 오류가 발생해도 잘 잡아내지 못합네다.
혹은 대충 살펴봐서 넘어간 건디...
(기런데 하동철 박사래 아주 매력적이지 않습네까?
시큰둥하고 냉소적이며 그다지 착한 편도 아니디만, 적어도 자기 소신은 뚜렷하고
겁이 없고 미치광이 근성도 있는 거이 '캐릭터'로서는 아주, 가장 마음에 듭네다.)
소심한 티라노사우루스라...
만약 개체마다 성격이 다르다면, 그만큼 고등으로 진화를 했다는 소리죠.
감정도 있고 말입네다.
당장 개처럼 고등이고 사회적인 동물덜은 저마다 조금씩 성격 차이를 보이디 않습네까?
혹은 천성은 아닐지라도, 성장 환경 주변 환경에 따라 변하고 말이디요.
사실 티라노사우루스는 가장 진화한 육식공룡의 하나라고 합네다.
왜냐하면 그쪽으로 진화한 녀석덜은 점점 발가락 수가 줄어드는 특징이 있는데,
앞발가락이 둘밖에 안 남았으니 꽤 진화했다는 야기디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