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진실은 어디에 숨어 있을까?

피피의 뇌가 많이 작동할수록, 그의 활동이 왕성하면 왕성할수록, 텔레비전 뉴스에서는 그에 대한 소식을 많이 전했다. 물론 피피라는 이름이 아닌 정체불명의 사내로 되어 있었지만. 아니, 그냥 사내가 아니라 사내‘들’이군. 피해자들의 진술에 따르면 그 범죄자들 각각은 전혀 다른 사람들이니까.
뉴스에서도 그렇게 보도했다. 같은 유형의 범죄가 계속 발생하고 있지만 동일범의 소행은 아니라고, 어쩌면 모방범죄나 특정 집단에 의한 범죄, 혹은 일종의 유행일 수도 있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하고 있었다. 웃기고 자빠졌네, 자식들. 그러고도 니들이 전문가냐? 모방범죄라고? 유행이라고?
한편에서는 인터넷 문화를 비판하고 나섰다. 인터넷이라는 편리한 매체를 통해 온갖 이상한 모임이 생겨나고 서로 얼굴도 모르는 상태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교류하면서 일종의 치기에서 비롯된 사회혼란이 생겨나고 있다고 한 평론가는 말했다. 특정한 대상도 없이 누구에게나 행해질 수 있는 그 범죄는 아마도 자신의 업적을 과시하기 위한 그릇된 성취감에서 비롯된 것일 수도 있다고 그는 분석했다. 경찰에서는 인터넷 모임들을 들쑤시느라 난리가 났다. 그 많은 모임들을 뒤져 관련 게시물을 찾아내느라 인터넷 전체가 들썩거렸다.
놀고 있네, 자식들. 왜 가상공간에서 찾으려고 하나? 정신 나간 놈들 아냐? 아니면 경찰 네놈들이야말로 현실도피주의자들이 아닌가? 진실은 오프라인에 있는데 왜 온라인을 들쑤시면서 지랄을 떨고 있는 거지?
그러고 보니 이전에 잠깐 경찰관에게 쫓기던 기억이 났다. 아마 지나가는 계집의 얼굴에 시커먼 폐유를 뿌리고 달아나던 때였을 것이다. 그때 그놈, 잘난 척하고 쫓아오던 경찰 놈, 뭘 잘났다고 그렇게 설치나? 그냥 못 본 척하고 얌전하게 순찰이나 계속 돌지. 순찰? 큭큭! 그래, 나만 빼고 다른 범죄자를 열심히 단속하기 위한 순찰 말이다.
생각이 거기에 미치자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온몸에 좀이 쑤셨다. 그는 즉시 대상을 물색하기 시작했다. 굳이 어렵게 찾을 것도 없었다. 워낙 세상을 시끌벅적하게 만들어 놓아서 거리에는 순찰중인 경관들이 많았다. 하지만 주로 둘씩 짝을 지어 다니기 때문에 쉽게 행동을 할 수는 없었다. 아무래도 명색이 경찰인 만큼 일반인들과는 달리 자기 동료가 습격을 당했을 때 그저 멍하게 쳐다보지는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슬슬 기회를 노리면서 이리저리 떠돌던 중, 마침 좋은 기회를 만났다. 한 경찰관이 동료와 헤어져 상가건물 안으로 들어가고 다른 자는 밖에 남았다. 분명히 화장실로 가겠지.
그 안으로 쫓아 들어갔다. 역시나, 그 경찰관은 소변을 보고 있었다. 피피가 화장실 안으로 들어서자 그는 힐끗 돌아보고는 다시 앞쪽을 향했다. 그 옆에 서서, 팔꿈치로 그를 툭 쳤다. 그가 힐끗 돌아보았다.
“넌 누구야? 가짜 새끼 아냐?”
피피는 그 경찰관을 노려보며 으르렁거렸다. 그의 얼굴에 경악의 빛이 떠올랐다. 오줌 줄기가 마구 이리저리 흔들렸다.
“감히 내 행색을 하고 다녀?”
그렇게 내뱉고 나서, 물총을 꺼내 상대의 얼굴을 쏘았다. 시뻘건 고춧가루 물이 눈에 들어간 그 경찰관은 두 손으로 얼굴을 움켜쥐었다. 피피는 물총을 입구의 쓰레기통에 버리고 태연하게 밖으로 나왔다. 이미 얼굴은 본래 모습으로 바뀌어 있었다.
뉴스 아나운서는 경찰관에 대한 테러까지 시작되었다고 흥분된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가해자가 피해 경찰관 자신과 똑같이 생겼다는 말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단지 범죄자의 인상이 자신과 조금 비슷하다고만 밝혔다. 아마 그 경찰관이 미친놈 취급을 당하고 싶지 않아서 그 사실을 감추었거나, 아니면 뉴스데스크에서 부적절한 정보 같다고 삭제한 것일 수도 있었다. 혹시 모르지. 범죄자가 자신과 똑같이 생겼다고 말하면 괜히 그 피해가 자신에게 돌아갈까 싶어 감췄을지도. 이 친구야, 자네 진짜 경찰 맞아? 경찰이 목격한 사실을 그대로 진술하지 않으면 쓰나. 그래 가지고 어찌 민중의 지팡이라고 할 수 있겠어? 자네가 진실을 말하지 않는데 과연 일반인들이 진실을 말할 수 있을까?
그러고 보니 그것도 괜찮은 아이디어 같았다. 피해자의 얼굴을 그대로 모방하는 것. 그 뒤로는 ‘일’을 할 때 피해자의 얼굴을 베꼈고 드디어 방송에서도 그것이 떠들썩했다. 처음에는 공포에 질린 피해자가 헛것을 보았거나 사건 당시 화장실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과 혼동을 일으킨 것이라는 분석도 있었지만 동일한 유형의 피해자가 속출하자 매스컴이 들썩거리기 시작했다. 이제 이 범죄는 단순히 치기에서 비롯된 인터넷 모임 차원이 아니라 훨씬 조직적이고 전문적이고 집단적 성격을 띠고 있다고 분석가들은 말했다. 사람의 얼굴을 그대로 베껴서 만들 정도라면 보통 범죄가 아니라는 것이다. 따라서 그와 관련된 분야에 대한 집중적인 조사도 있었다. 영화 특수효과에 사용하는 라텍스폼 따위를 취급하는 업체부터 모형 제작자들까지 수사의 대상에 포함되었다. 특히 그 중에서도 눈길을 끈 것은 특수효과라면 국내 영화계에서 제일간다는 어느 영화사에 대한 수사 소식이었다.
인터넷은 도플갱어에 대한 이야기로 들썩거렸다. 모든 검색사이트의 검색순위에서 ‘도플갱어’는 한동안 부동의 1위를 고수했다.

*

이 역시 지난번 올린 <고독한 영웅, 맨손의 라은보>와 같은 시기에 쓴 연작의 일부이다. 소설 자체를 올리고자 하는 생각은 없고, 다만 그 중 ‘세상을 깐’ 대목이 눈에 띄어 그 부분만 발췌했다.
이번에 쇠고기 정국을 놓고 정부여당 및 수구꼴통들이 지껄여 대는 소리들이 여기에 들어 있다. 사실 이 연작은 그저 신체 부위의 반란을 소재로 한 ‘괴기’소설이지만, 아무래도 곳곳에서 세상사를 들먹이는데 특히 이 작품이 그렇다. 주인공의 개성에 맞추어 빈정거리는 분위기로 진행된다는 점에서 <맨손의 라은보>와는 크게 다르다. 그러다 보니 풍자물을 쓰면서 생겨난 세상사 비꼬기가 절로 배어든 것이다.
지난 10년을 돌아보면 꼭 무슨 큰 사건이 있을 때 그 핑계를 문화 쪽으로 돌렸다.
“자극적인 영화 탓이다.”
“게임 탓이다.”
“인터넷 탓이다.”
내가 그런 족속들에게 해 줄 말은 딱 이거 하나다.
“좆 까시라!”
영화를 지독하게 가위질하던 시절이라고 강력범죄가 없었나? 아직 서양식 정서는 우리 국민들에게서 한참 멀었고 언론과 문화가 철저하게 통제되던 그 박정희 정권 때에도 도끼로 17명의 머리를 쪼갠 김대두와 자기 마누라를 죽여 토막 낸 뒤에 깍두기에 섞어 팔았던 이팔국이 있었다.
영화에 대고 지독하게 가위질만 하면 된다고 착각한 자들은 정말 시대에 한참 뒤처져 있거나 혹은 뒷걸음질하는 족속들이었다.
그리고 오늘날 네티즌을 폄하하고 장악하려는 정부당국 역시 시대에 한참 뒤처진 하등동물이다. 이런 퇴보하는 동물들은 도태될 수밖에 없는데, 문제는 저런 것들이 이 나라를 이끌고 있다는 것이다. 참으로 끔찍하다.
문화는 사회현상을 반영하는 것이지,
문화의 한 단면이 사회를 통째로 뒤집어엎는 게 아니라는 것을
그 하등동물들은 알지 못한다.

by jushin | 2008/07/17 19:06 | 세상깔보기 | 트랙백 | 덧글(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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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Be FREE♪Park! at 2008/07/17 20:24
문화는 사회의 반영이지...
문화가 사회를 주조(?)하나..?
그런 생각 합니다.

해괴망칙한 범죄들의 증가의 이면에...
사회구조적 모순도 들어있고, 사회에 만연한 풍조도 들어있고, ...
범죄자의 성장과정도 들어있지요. 한순간의 욱하는 감정까지요. ^^

그런데 자꾸 문제의 원인을 인터넷이다, 영화다, 만화다, 게임이다... 떠들죠.
쥬신님 옆에 묻어서 저도 외치고 싶어지네요. 됻 까시라...! (이 카타르시스!)
사실, 정말이지, 됻까는 소리를 하고 자빠진 거죠.
2mb가 얼마전에 무슨 인터넷의 해악을 지적했다죠...?
만약에 인터넷과 온라인이 해악을 끼친 게 있다면...
자신이 끼친 해악은 그것의 수천배, 수만배, ...가 됨을 아는지~ 모르는지~!

소설의 일부라고 하셨는데... 처음에 피피가 누군가 했습니다. ^^
읽으면서 쥬신님의 목소리라고 하기엔 날이 좀 많이 서 있군 했거든요.
읽어가다 보니, 작중 등장인물의 목소리였군요.
처음 문단 네 개는
현재의 상황에 대한 판단과 분석 그리고 비판으로 잘 맞아떨어집니다.
그것이 현재의 상황과 묘하게 맞아떨어지는 면이 있고...
그래서 쥬신님은 해당하는 소설의 일부를 이렇게 올려보신 것이고...
그런 거란 생각이 들었는데... 후기에 적고 계시는군요. ^^
Commented at 2008/07/18 03:03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나무귀신 at 2008/07/18 13:46
그네들이 까야할 좆은 제대로 달려 있는지....

좆돌아가는 방향으로 뭐든지 하려는 자들이어서요 ㅋㅋㅋ
"영화탓, 인터넷 탓, 게임탓이다" 하는 사람들께'
"이게 다 이명박 때문이다"라고 하면 크리티컬 데미지겠군요!
Commented by ♣Be FREE♪Park! at 2008/07/21 12:00
(독백모드)

이 블로그 쥔장님은, 우주유영을 떠나신 게야...
늘 우주유영이 그랬듯이, 여름이잖아.
언제나 돌아오실라나.
새글 올라왔나... 해서 매일 두어번씩 들르는 중... ^^

잘 다녀오시라...!
Commented by 꼬깔★ΚΩΝΟΣ at 2008/07/24 01:24
제 생각에도 박코스님께서 드디어 잠수를 시작하신 듯합니다. :) 숨차실테니 조금만 담그셨다 오시기 바랍네다. :)
Commented by ♣Be FREE♪Park! at 2008/08/05 12:00
유영을 떠나신지 이제 20일이 다 되어 갑니다. ^^
언제 돌아오실는지...는 주신님만 아시겄쥬?
무사 귀환을 염원합니다. ^^
Commented by ♣Be FREE♪Park! at 2008/08/05 12:03
조금 뒤적여 보니, 2006년 여름에는 40일간의 유영을 다녀오신 적이 있으셨군요.
흠흠... 더 길어지지는 않았으면 합니다. ^^ 뭐, 필요하시다면 어쩔 수 없지만요. ㅋ
Commented by puremo at 2009/03/14 10:51
참 독특한 정신세계를 가지고 계신 분 같네요. ^^; (나쁜 의미는 아닙니다) 글도 잘쓰시고. 헌데, 우리가 통념으로 가지고 있는 생각들을 기묘하게 틀어보는 능력이 탁월하신듯 합니다. 글 들을 다 읽어보지 못했습니다만, 어디선가 (제 기억이 잘못이 아니라면) .. 직장에서 근무하는 분이라고 하신듯 하던데... 이렇게 독특한 정신세계를 가지신 분이 어떻게 그런 닫힌 공간(열린 직장인지 모르겠습니다만 ^^;) 에 기거하실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더군요. (독특하신 정신세계와 직장이라는 두 단어가 서로 모순되게 느껴져서 말이죠.) .. 외람된 표현인지 모르겠습니다만, .. 님의 글을 볼때마다 우리 지상인들과는 격이 다른 ..외지의 곳에서 온 분이 아닐까, 혼자 상상해 보곤 합니다. 즐거운 하루 되세요. ~(__)~
Commented by jushin at 2009/03/16 17:56
답변이 늦었습네다.
이미 맨 위에 밝힌 바와 같이 제가 이 블로그는 이제 '포기'하기로 한 까닭에
거의 들어오지 않기에 뒤늦게 읽었습네다.
다행히 이틀 차이니끼니 운이라면 운이겠구만요.

'독특한 정신세계' 등으로 표현을 하셨는데, 사실 그렇다고 자부합네다.
이 블로그 곳곳의 게시물, 특히 초기에는 개인적인 얘기를 종종 다루었는데,
어린 시절부터 상당히 삐딱하게 옆으로 샌 것이 사실입네다.
다만 학교나 어떤 조직에 속하든 그 '규정은 철저히 지키는' 편이었는데,
기러니끼니 더 이상한 거갔디요.
보통 불량학생은 아닐지라도 한창 반항기 있는 십대 시절엔 일부러 교복을
삐딱하게 입고 그런 치기 혹은 일탈을 즐기는데 저는 가장 옆으로 새면서도
그 모든 규정을 철저하게 지켰으니까요.
기러니 오히려 더욱 독특하게 발전한 거갔디요.
어찌 보면 '그렇기에' 더 독특하게 되는 걸 겁네다.

사실상 직장을 그만둔 지는 꽤 됐습네다.
그 뒤로 보다 다양한 관점을 가지고 기존의 잣대를 뒤집어 재게 된 기디요.
때론 어떤 인간들의 심리, 혹은 사회적 현상을 거꾸로 평하기도 한다는 겁네다.

사실 직장 시절에도 특이한 짓을 많이 했디만, 예술가는 님의 말씀처럼 닫힌
공간에서 견디기가 힘들디요. 심하면 모든 체제와 규정을 부정하기도 하고.
기런데 저는 군대건 직장이건 모두 아주 활달하게 생활을 해서 오히려 일반적인
군인(사병)이나 직장인보다 더 적응을 잘하는 편이었디요.
예술성과 조직 적응, 이거이 사실상 모순인데, 그 모순을 뛰어넘었으니
말씀하신 대로 더 특이해지는가 봅네다.
"예술가는 이래야 한다"는 정형성(?)조차도 깨뜨렸으니 말입네다.
다만 조직 내에서 생길 법한 스트레스를 즉시 행위 또는 창작(주로 만화)으로
발산해 버린다는 점이 오히려 더 적응을 잘한 듯합네다.
그보다 더 근본은 나 자신에 앞서 '남의 관점'에서 생각한다는 것일 겁네다.

기래서 근년 들어서는 스스로를 많이 연구하는 편입네다.
이러한 '뇌'는 어떻게 해서 형성되었는지에 대해, 그 근원을 파고 있디요.
작년 봄쯤 여기서 언급한 '표현의 자유와 타인에 대한 배려'라는,
제가 만든 도표에서 언뜻 모순된 결과를 보이는데 그것을 만든 이유도 같습네다.
또한 "뇌에 거울과 브레이크를 달고 있다"는 표현을 종종 쓰기 시작했는데
그 역시 같은 이유입네다.

사실 저는 장르를 초월해서 거의 모든 분위기의 소설을 다 다루어 보았는데,
그 때문에 10년 넘게 알고 지내는 작가 동료는 몇 년 전에 표현을 쓰더만요.
"백화점과 같은 뇌 구조."

모처럼 핵심을 파고든 즐거운 댓글을 읽었습네다.
고맙습네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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